2011년 11월 6일 일요일

ISD는 공공정책을 어떻게 무너뜨리나?

공공정책 자율권 어디까지 확보되었나


투자자-국가 분쟁(ISD)은 공공정책을 어떻게 무너뜨리나?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연재되고 있다. 1편은 여기, 2편은 여기)>
(남희섭: 이 글은 출처를 명시하는 한, 자유롭게 복제, 전송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국회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임박하면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 - 필자는 이를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부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상자 참조)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미 FTA 협상이 개시된 2006년부터 ISD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심지어 2007년 5월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도 CBS 시사자키와의 인터뷰에서 ISD가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인터뷰 전문)

5년이 더 지난 2011년, 다시 ISD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외교통상부는 10월 31일 “한·미 FTA의 공공정책 자율권 확보 현황”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 “ISD로 인해 우리 정부의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ISD로 인해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외교통상부의 해명, 누구 말이 옳을까? 필자가 보기에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공공정책 자율권 확보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작 해야 할 설명은 빼먹은, 그래서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ISD에 대한 우려에 대한 정부의 해명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ISD는 국제 표준이다. 둘째,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ISD가 필요하다. 셋째, 공공정책 재량권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ISD로 인해 공공정책이 무력화되지는 않는다. 이 해명이 타당할까? 그렇지 않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정부의 해명을 역순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정부 해명의 마지막 부분 즉, 공공정책 재량권 확보 여부는 ISD 논란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협정 의무
공공질서 유지


사회서비스


환경 서비스



보건의료 서비스


교육


11.3조(내국민대우)


O


O


O


O


O


11.4조(최혜국대우)


X


O


X


O


O


11.5조(최소기준대우)


X


X


X


X


X


11.6조(수용․보상)


X


X


X


X


X


11.7조(송금)


X


X


X


X


X


11.8조(이행요건)
O
O


O

O
O


11.9조(고위경영진․이사회)


X


X


X


O


O


제한


*1


*2


*3


*4


*5

ISD는 한국이 협정문 제11장(투자)의 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 투자자가 손실 또는 손해를 입은 경우에 제기될 수 있다(11.16조). 협정문 제11장에는 투자 보호를 위해 모두 7가지 의무를 열거하고 있는데, 위 표의 첫째 열은 이를 나타낸다. 위 표에서 첫째 행은 공공정책의 대표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5가지(공공질서 유지, 사회서비스, 환경, 보건의료, 교육)를 예시하였다. 표에서 녹색 칸은 유보된 의무를 말하고(O로 표시), 격자무늬 칸은 유보되지 않은 의무(X로 표시)를 말한다. 맨 아래 열은 유보된 의무라 하더라도 여기에는 각종 제한이 따른다는 점을 보여준다(제한사항은 너무 많아 표에 넣지 못했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설명한다).

이 표를 통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공공정책에 대한 유보는 ISD 적용 대상이 되는 7가지 의무 중 일부 의무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나머지 의무에 대해서는 유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공공정책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의 조치로 인해 손실을 입었다고 판단하면 미국 투자자는 얼마든지 ISD를 제기할 수 있다. ISD가 공공정책을 무력화하는 첫 번째 경로는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에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여태까지 정부는 공공정책이 포괄적으로 유보되어 있다고만 했을 뿐, 유보하지 않은 의무가 있다는 점은 설명한 바가 없다.


현재유보와 미래유보


지금까지 막연하게 ‘유보’란 용어를 사용해 왔는데,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 유보되었는지는 협정문의 <부속서>를 보아야 알 수 있다. 한미 FTA에서 유보는 2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현재유보’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유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현재유보는 협정문의 <부속서 I>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공공정책 중 협정상의 의무와 합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유보를 했다는 말은 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보류했다는 의미이므로 현재유보에 기재되어 있는 공공정책은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그대로 시행할 수 있다. 다만 현재유보에 기재되어 있는 공공정책은 규제를 한 번 풀면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제한(이른바 ‘역진금지(ratchet)’)이 따른다[1]. 예를 들어 현행 ‘영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수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바로 스크린쿼터인데, 영화상영 서비스에 진출한 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시장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로 협정 위반이다. 그런데 <부속서 I>에서 “대한민국 내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각 상영관에서 연간 73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유보를 달았기 때문에, 비록 협정 위반이지만 한국은 스크린 쿼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다만, 협정에서 유보한 73일을 현행 법령에서 50일로 줄이면 다시는 73일로 되돌릴 수 없다(역진금지 조항 때문에).

현재유보와 달리 미래유보는 역진금지가 적용되지 않고 한미 FTA에서 약속한 의무를 앞으로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를 열거한 것으로 모두 44개 분야가 <부속서 II>에 기재되어 있다. 다시 위 표로 돌아가서, <부속서 II>에 기재되어 있는 44개 분야 중 대표적인 5개 분야만 살펴보더라도, 협정문 제11장(투자)의 7개 의무 중 2개, 많아야 4개 의무만 유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도 유보되어 있지 않은 대표적인 의무 2가지가 바로 11.5조(최소기준대우)와 11.6조(수용 및 보상)의 의무이다. 대부분의 ISD 사건에서 투자자는 이 의무 위반을 근거로 삼는다.

가령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른 ISD 사례를 분석해보면, 아래 표로 정리한 것처럼, 2010년 10월 1일 현재 알려진 중재청구 66건 중 투자자가 어떤 이유로 ISD를 제기했는지 알 수 있는 56건에서 ‘최소기준대우’ 위반을 주장한 ISD가 모두 45건(80%)에 달한다[2].

전체 청구건(A)

청구이유를 알 수 있는 건(B)


‘최소기준대우’ 위반 주장이 포함된 건(C)


비율(B/C)


66


56


45


80.04%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최소기준대우’와 ‘수용 및 보상’ 의무는 유보를 하지 않을까? 정부는 이런 의무는 성질상 유보를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최소대우기준’이란 “외국인의 대우에 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으로(협정문 제11.5조 제2항),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말한다(부속서 11-가). ‘수용 및 보상’ 의무란, 쉽게 설명하면, 국가가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 투자자에게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대우할 수 없다거나, 미국 투자자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무는 원래 유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골자다. 필자도 이 주장에 동의는 한다. ‘최소대우기준’과 ‘수용 및 보상’은 그 의무의 본질상 이를 포괄적으로 다 유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기준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보면 정부의 설명처럼 그 본질이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헌법을 들여다보면 과연 ‘최소대우기준’과 ‘수용 및 보상’ 의무의 유보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생긴다.

최소대우기준

‘최소대우기준’ 의무를 중심으로 이 의문을 풀어보자.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최소대우기준’은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관습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는 데에는 2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말이 좋아 ‘국제관습법상의 원칙’이지 이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습법이란 말 그대로 별도의 법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막연히 관행으로 굳어져 인정되는 법규이다. 관행으로 굳어져 인정되는 법규가 무엇인지는 누군가의 해석을 통해 확인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서울로 한다는 관습 헌법이 존재한다는 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은 다음에야 확인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ISD의 경우 국제관습법을 확인해주는 사람은 바로 통상법을 전공한 법률가들이다. 이들이 해석을 통해 확인하는 국제관습법은 때로는 법을 새로 만드는 입법 기능에 이르기도 한다. ADF 사건에서도 중재판정부는 “최소기준대우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 맥락에 따라 변천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3]

둘째, 한미 FTA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리 헌법에서 추구하는 공공정책들이 과연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을 만족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가령 우리 헌법 제123조 제3항은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중소기업 보호 조항과 경제민주화 조항에 따른 법률로는 유통법(유통산업발전법),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유통법에 따르면 시장, 군수, 구청장은 전통상업보존구역 내에는 대규모 점포가 입점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고, 상생법에 따르면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에 현저하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경우 중소기업청장은 대기업의 사업을 축소하거나 사업진출을 연기하도록 권고·명령할 수 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기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둘로 나눈 다음 대기업에 대해서는 입점을 못하게 제한하고 사업을 축소하도록 명령하는 제도가 과연 국제관습법으로 인정될까? 필자가 아는한 이런 국제관습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사업조정 명령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국제관습법에 따른 최소대우라고 보기 어렵다.

만약 미국 투자자가 한국 대기업의 사업에 투자를 했는데, 상생법에 따른 한국 정부의 조치로 인해 사업진출이 막힌다면 미국 투자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여 이 조치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한미 FTA가 보장하는 ‘최소대우기준’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 한국 정부는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 의무는 처음부터 유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소대우기준’ 유보를 통째로 포기하면, 한국에 진출한 미국 투자자는 우리 헌법 질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가 생긴다. ‘최소대우기준’을 투자 협정에 집어넣고 ISD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자는 투자유치국의 국내법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 그 의미와 내용이 애매한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라는 조항을 만들었던 것이다.


ISD 소송이 아니다.  


흔히들 ISD 투자자-국가 소송 또는 투자자-국가 제소라고 부르는데,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ISD 소송과는 전혀 다른 사적 분쟁 해결 제도이기 때문이다. 영문 ISD(Investor-State Dispute)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투자자-국가 분쟁이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은 소송이 아니라, 중재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재 3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이다. 중재 소송 2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중재는 당사자가 선택하는 사적 분쟁 해결 방식이기 때문에 중재 판정부를 분쟁 당사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구성한다. 한미 FTA 들어있는 ISD에서도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3인의 중재인 명은 투자자가 임명하고 다른 명은 당사자인 국가가 임명한다. 마지막 명이 의장 역할을 맡는데, 의장 역시 당사자가 합의하여 임명한다(협정문 11.19). 이처럼 중재 절차에서는 중재판정부를 당사자가 임의로 구성하는 것과 달리, 소송에서는 당사자가 재판부 구성에 관여할 없다. 법원의 판단은 공권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ISD에서 중재인을 당사자들이 정하도록 했지만 아무나 중재인으로 임명할 수는 없고 중재인 명부에 등록된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현재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절차에 따른 ISD에서 당사자들이 임명한 중재인 48% 서유럽인이고, 23% 북미인이다. 아시아 태평양 출신 중재인은 8% 불과하다.
 
둘째, 중재는 사적 분쟁 해결 방식이기 때문에, 분쟁 당사자들이 소송이 아닌 중재 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를 해야만 절차가 시작된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피고가 사람과 미리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재와 소송의 차이점을 쉽게 있다. 이처럼 중재는 내가 합의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절차이다. 그런데 한미 FTA 합의 권한을 박탈했다. 국가는 투자자가 요구하는 중재 절차에 동의하지 않을 재량권이 없다는 말이다(협정문 11.17). 이건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미국 투자자가 한국을 상대로 ISD 제기하면, 한국은 일단 분쟁 절차에 끌려가야 한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공공정책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모든 결론은 중재판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결국 공공정책의 운명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3인의 중재인에 의해 판가름난다. 이처럼 공공정책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중재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절차로만 보면 협정에서 공공정책에 대한 예외나 유보를 것과 두지 않는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결과가 생긴다. 원래 ISD에서도 중재 합의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보장하고 있었는데, 이를 박탈한 최초의 FTA 바로 1994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고 한미 FTA 바로 NAFTA 모델로 것이다.


간접 수용의 문제점

이 글의 제1편에서는, 공공정책 재량권을 확보했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협정문에는 어떠한 공공정책에 대해서도 유보를 하지 않은 의무가 2가지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유보하지 않은 의무 중 하나인 ‘최소대우기준’을 중심으로 이러한 유보의 포기가 왜 타당하지 않은지 설명했다. 이제 나머지 의무인 ‘수용 및 보상’ 의무를 살펴보자. 제1편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투자자의 재산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몰수하겠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이 의무 역시 성질상 포괄적으로 유보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어떠한 투자협정에서도 ‘수용 및 보상’ 의무를 유보한 예는 없다. 그래서 이 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ISD 분쟁이 많이 있었다. 홍석모에 따르면, 2009년 9월 현재 총 61건의 NAFTA ISD 사건 중 간접수용과 관련된 주장이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 42건으로 68.9%에 달한다[4].

그럼 이 분쟁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국가가 마구잡이로 수용을 해서 생긴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는 정당한 공공정책의 집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들은 자기의 투자를 수용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쟁이 생긴 것이다. 한미 FTA에도 이런 가능성이 그대로 존재한다. 협정문의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면, 한미 FTA에서 말하는 ‘수용’이 재산을 몰수하는 ‘직접 수용’만 포함하지 않고, ‘간접 수용’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ISD 분쟁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예를 하나 들자. 캐나다 정부가 ISD에 회부된 최초의 사건(1996년 3월)은 재산의 몰수와는 상관없는 의약품 허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멕시코 제약사 시그나(Signa)는 독일계 다국적 제약사 바이에르(Bayer)가 판매하는 시프로(Cipro, 911 이후 탄저병 예방제로 유명세를 탔음)의 복제약을 만들어 캐나다 식약청에 품목허가 신청을 냈다. 그런데 바이에르가 시그나의 복제약이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캐나다 식약청은 관련 법률에 따라 시그나 복제약의 품목허가를 30개월 동안 보류했다. 시그나는 이 품목허가 보류 조치가 수용에 준하는 조치 즉,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며 ISD를 제기하면서 약 5천만 달러(캐나다 달러)의 보상을 요구했다(시그나의 ISD 청구서(중재의향서)는 여기) [이 사건은 더 진행되지 않았는데, 시그나측 변호사의 진술에 따르면, 캐나다 대법원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고, 캐나다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야 하는 멕시코 제약사 입장에서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한 분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미 FTA에서 간접 수용에 대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규정한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우리 헌법과 맞지 않다는 데에 있다. 법무부가 펴낸 ‘한국의 투자협정 해설서(2010년)’의 표현을 빌리면 “간접수용이란 의미는 우리 법제상 없는 개념”이다(210면).

원래 투자 협정에서 ‘수용 및 보상’ 규정을 두게 된 이유는 외국인 자산의 국유화 조치에 대한 보상 문제 때문이었다. 투자 유치국의 법률에 따른 보상이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불만이었던 것이다. 이런 국유화 조치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나, 2차 대전 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생 독립국에서 많이 단행되었다(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자간투자협정(BIT)을 맨 처음 맺은 나라는 2차 대전에 패한 독일이고, 유럽 국가들은 독일을 따라 BIT를 체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국유화나 직접 수용은 크게 줄어든 반면 과세 조치나 환경 조치 등으로 인해 직접 수용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는 조치 즉, 간접수용이 문제되기 시작하였다(법무부, 2010: 104면). 그래서 미국은 양자간 투자협정 모델에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원칙을 도입하는데 이 때가 1982년이다[법무부, 국제법무과 (2010년) ‘국제투자분쟁 공무원 교육자료’ 104-5면].

이처럼 간접수용이 포함된 모델 협정에 기반한 FTA가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이다. 그런데 1994년에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간접수용을 근거로 ISD를 제기하여 국가의 환경이나 보건 등에 관한 규제를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간접수용을 인정한 최초의 NAFTA 사례인 메탈클래드 사건(Metalclad v. Mexico, 2000년)에서 중재판정부는 간접수용의 법리를 확장 해석하였고,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도 간접수용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었다. 국가의 공공정책 재량권이 훼손되고 미국인 투자자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여 미국 의회는 2002년에 투자협정의 간접수용을 미국 판례법에 따른 간접수용 법리와 일치하도록 변경하고, 외국 투자자가 미국 투자자보다 더 보호받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리고 양자간 투자협정 모델 2004년판에서는 간접수용 법리를 제한하는 내용의 부속서를 채택했다.

한미 FTA의 수용과 관련된 내용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장하는 간접수용의 제한들은 극히 일부분(특별희생, 부동산 가격안정화)을 빼면 모두 미국의 모델 협정에서 따온 것들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미국의 법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국가의 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로 <부속서 11-나>에 열거되어 있는 (1) 정부 행위 경제적 영향, (2) 합리적 기대의 침해 정도, (3) 정부 행위의 성격 등 3가지 요소는 모두 미국 대법원의 판결(Penn Central Transportation Co. v. City of New York, 438 U.S. 104 (1978))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공공정책을 간접 수용으로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안정화” 등을 열거해 두었지만, 단서를 달아 공공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에서는 간접수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통상 관료와 통상 법률가의 손에 맡긴 공공정책의 운명

한미 FTA는 공공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부의 통상 관료 또는 개인 법률가(중재인)들이 판단하도록 했다. 이를 제도화하는 통로가 바로 ISD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의 신분이 아닌 개인 자격의 중재인이 ISD 사건에서 판정을 내린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므로, 통상 법률가들의 손에 공공정책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데에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통상 관료들은 공공정책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나?

협정 제11.23조에 이런 조항이 있다. 투자자가 ISD를 제기한 조치가 공공정책으로 유보되었다고 국가가 항변하는 경우 중재판정부는 분쟁 당사자인 국가의 요청에 따라 공동위원회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공동위원회가 해석 결정을 내리면, 중재판정부는 이 결정을 따라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공동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협정 제22.2조에 따르면, 공동위원회는 한미 양국의 공무원으로 구성되고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공동의장을 맡는다. 공공정책의 정당성이 통상 관료들의 손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위원회는 공공정책의 정당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설립하는 조직이 아니다. 협정문에는 “한미간 무역 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공동위원회의 임무로 명시되어 있고(제22.2조 제2항 다호), 한미 FTA는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투자환경을 창출”하고, 한미간의 “투자를 자유화하고 확대”하며, “투자에 대한 장벽의 축소 또는 철폐를 추구”하는 협정이다(협정문 서문).

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장벽으로 작용할 우리 공공정책을 통상교섭본부장이 얼마나 옹호하는 해석 결정을 내릴까? 그 동안 통상교섭본부는 우리 농산물 우선 사용을 규정한 지자체 조례(전북, 경남)를 무효화시킨 바 있고, 중소상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유통산업발전법),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는 국회에 어깃장을 놓았고, 건설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굴삭기 수급조절제도를 좌절시킨 바 있다.

한미 FTA의 ISD가 국제표준인가?

정부는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가 “우리가 체결 발효한 85개 투자협정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2,500여개에 달하는 투자 관련 국제협정에 규정되어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모두 다 하는데, 웬 트집이냐는 얘기다. 정부의 설명처럼 국제적으로 많은 투자협정에 ISD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ISD가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사실 왜곡이다.

ISD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중재의 기본인 동의에 대한 재량권이 보장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협정 의무 위반인 경우에만 제기할 수 있는 ISD와 협정과는 무관한 별도의 투자계약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 있는 ISD, 투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등으로 ISD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는 가장 포괄적이고, 동의에 대한 국가의 재량권을 박탈한, 그래서 과거의 ISD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보도자료 제11-1004호, 2011년 11월 3일), 2011년 9월 1일 현재 우리나라에 발효 중인 7개 FTA 중 6개, 양자간 투자협정(BIT) 85개 중 81개에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미 FTA와 같이 사전동의 규정이 존재하는(그래서 동의에 대한 국가의 재량권이 박탈된) 협정은 30개에 불과하다. 전체 81개 협정 중 사건동의 규정 대신 동의의무 규정이 포함된 협정이 40개인데, 정부는 동의의무 규정과 사전동의 규정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정부 입장을 지지할 수 없다. 동의의무 규정이란 ISD 절차에 참여할지를 국가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동의를 하지 않으면 협정 위반이 되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협정 위반이 되면 투자자-국가 분쟁이 아니라 국가-국가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동의를 하지 않으려면 상대국과의 분쟁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에서 동의의무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한국 정부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조치(예컨대, 보험약가를 미국 제약사가 신청한 것보다 낮게 정한다거나, 미국 제약사가 신청한 품목허가를 거절한다거나,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에 대해 ISD가 제기된 경우, 외교적 해결을 위해 ISD 절차에는 동의를 하지 않을 재량권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미 FTA는 ISD의 대상이 되는 투자의 개념도 매우 넓게 정의한다. 가령 한-칠레 FTA, 한-싱 FTA에서는 협정의무 위반인 경우에만 ISD를 제기할 수 있지만, 한미 FTA에서는 투자인가, 투자계약 위반인 경우에도 ISD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칠레 FTA에서는 이미 설립된 투자에 대해서만 ISD를 제기할 수 있지만, 한미 FTA는 ‘설립 전 투자’도 투자 개념이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IS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한미 FTA의 ISD와 아무런 구별도 하지 않고 2,500개의 투자 협정에 규정된 국제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ISD는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가?

ISD에 대한 정부의 마지막 반론은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럼 85개에 달하는 투자협정을 체결한 나라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그 동안 ISD를 통해 얼마나 안전을 보장받았을까? 정부가 국회 박주선 의원의 질의에 제출한 공식 답변을 통해 그 실상을 알아보자. 아래 표가 정부 답변이다.



○ 질문: 현재 ISD가 포함된 BIT를 체결한 국가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한 사례.
● 답변: 현재까지 우리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음.
○ 질문: 현재 ISD가 포함된 BIT를 체결한 국가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하지 않고 투자 유치국의 국내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투자 유치국의 조치를 철회 또는 변경시킨 사례
● 답변: 상기 사례에 대해서는 외교통상부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음. 상기 사례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법무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지 아니함.


정부의 공식 답변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하여 ISD를 통해 보호받은 사례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정부가 얘기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실증되지 않은 일종의 무증거(evidence zero) 영역이다.

실제 활용은 되지 않았지만, ISD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또 다른 논거는 투자유치국의 법정이 아닌 제3의 중재기관에서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분쟁 해결을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ISD 사건을 처리하는 중재기관이 사법부보다 더 공정한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주장은 국가의 사법작용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만약 미국 법원이 소송에서 한국 기업을 차별한다면, 이는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사안이다.


[1] 이런 점에서 한미 FTA의 역진금지가 우리 정부가 취하는 어떠한 조치에도 다 적용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틀렸다. 역진금지가 적용되는지 아닌지는 <부속서 I>의 현재유보 내용을 보아야 알 수 있다.

[2] 이 통계는 Michelle E. Gray, ‘Broadening NAFTA Article 1105 Protections: A Small Price for International Investment’, Houston Law Review Vol. 48 (Spring 2011), 418-420면과, Canadian Centre for Policy Alternative, “NAFTA Chapter 11 Investor-State Dispute (to October 1, 2010)를 통해 필자가 분석하여 구한 것이다.

[3] ADF v. United States, ICSID Case No. ARB(AF)/00/1 (NAFTA) (판정일: 2003년 1월 9일) 단락 180.
[4] 홍석모 (2009년) ‘간접수용을 둘러싼 한미 FTA 투자분쟁 예측 및 대책’, 법학연구 제36집, 3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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